비즈니스

새만금에 AI 밸리, 그리고 갑자기 정주영까지…정의선-젠슨 황의 너무 큰 비전

데이터센터와 로보틱스를 묶더니 이번엔 역사적 후광까지 패키지로 올렸다.

blue and green light streaks
Photo by bady abbas on Unsplash

현대차그룹과 엔비디아는 8일 공동 미디어 브리핑에서 새만금에 미래 모빌리티와 로보틱스, 데이터센터를 결합한 거대 'AI 밸리'를 조성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조롱의 대상은 이 협력 자체가 아니라, 정의선 회장과 젠슨 황 CEO가 내놓은 이 계획이 산업 인프라 설명과 영웅 서사를 한 냄비에 넣고도 아주 점잖게 끓여냈다는 점이다.

발표의 핵심은 새만금에 AI와 로보틱스, 데이터센터가 통합된 미래형 인프라 시스템을 공동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좋은 소식은 단어가 아주 많다는 점이다. 제품에서 제품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를 제외하면 발표는 상당히 완성도 높았고, 설계도보다 현수막이 먼저 도착한 공사장 같은 안정감도 있었다.

정의선 회장은 젠슨 황을 보면 정주영 선대회장이 떠오른다며 깊은 신뢰를 피력했다. 산업 협력 발표에서 갑자기 창업자 후광을 끌어오는 재주는 참 성실하다. 기술 동맹을 설명하다가 역사 인물의 아우라로 점프하는 순간, 계획은 비전이라기보다 제사상 옆에서 하는 사업설명회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현대차는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새만금 지역을 내세웠고, 엔비디아는 그 구상에 적극 동참하기로 화답했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적극'과 '거대'가 먼저 완성됐다는 사실이다. 숫자가 빠진 덕분에 발표는 누구에게도 반박당하지 않는 깨끗한 상태를 유지했고,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도 공식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이 구상은 사실상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표방하는 문장 구조를 갖췄다. 늘 그렇듯 이름을 먼저 붙이면 절반은 이룬 셈이라는, 비즈니스 세계의 멍청하기 짝이 없는 오래된 요령도 빠지지 않았다. 새만금에 AI를 얹고 로봇을 얹고 데이터센터를 얹은 뒤, 마지막으로 정주영까지 얹으면 데이터센터 위에 서사를 얹고 그 위에 추억까지 얹은 삼층 비빔밥이 된다.

물론 이렇게 두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함께 나와 신뢰와 비전을 말해준 덕분에 계획은 매우 웅장해졌다. 다만 웅장함이 구체성을 대신하는 순간, 그것은 사업 발표라기보다 대기업판 소원 적기 행사에 더 가깝다. 새만금에 무엇을 짓겠다는 말은 있었고, 왜 우리가 감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과하게 있었다.

결국 이번 발표가 가장 또렷하게 보여준 것은 AI 밸리의 실체보다도 대기업이 미래를 말할 때 얼마나 손쉽게 상징을 콘크리트처럼 부어버리는가 하는 습관이다. 정주영까지 호출해 놓고도 아직 비전 단계라면, 마지막 남은 변명까지 이미 너무 많이 써버린 셈이다.

반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