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KB증권 회사채 1.2조 몰렸다더니, 3년물은 민평보다 비싸게 팔린 그 우아한 완판
돈은 넘쳤지만 만기 하나는 할인점, 다른 하나는 정가 판매였다.
KB증권이 8일 AA+ 등급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4천억원 모집에 1조2천300억원의 주문을 모았고, 완판에 성공했다. 표면상으로는 성대한 흥행이지만, 이번 기사에서 조롱받아야 할 대상은 바로 KB증권의 그 완판 서사다. 숫자는 화려한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만기별 표정이 너무 달라 얌전하게 웃고 넘기기 어렵다.
KB증권은 2년물 1천500억원, 3년물 2천500억원을 모집했고 각각 6천700억원, 5천600억원의 주문을 받았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시장이 KB증권을 거의 잊지 못하는 줄 알겠지만, 같은 집에서 나온 채권인데 2년물은 환영받고 3년물은 추가 팁을 얹어야 앉는 손님 신세였다.
실제로 2년물은 동일 만기 민평 대비 3bp 낮은 수준에서 형성됐고, 3년물은 4bp 높은 수준에서 형성됐다. 완판이라고 써 놓으면 모든 것이 고르게 사랑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격표를 보면 한쪽은 할인점이고 다른 쪽은 정가도 모자라 웃돈까지 붙은 셈이다.
이쯤 되면 1조2천300억원이라는 총주문액은 훌륭한 성적이면서도 동시에 꽤 교묘한 커튼이다. 커튼을 걷으면 보이는 것은 간단하다. 시장은 KB증권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3년 동안 더 오래 봐줄 생각에는 4bp의 수당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KB증권이 최대 8천억원까지 증액 발행을 검토한다는 대목은 특히 품위 있다. 잘 팔린 2년물의 환호와 3년물의 미묘한 찡그림을 한 바구니에 담아 모두 '수요'라고 부르는 기술은, 점심 메뉴는 줄이 섰는데 저녁 메뉴는 쿠폰을 붙여야 나가는 식당의 자신감과 닮았다. 시장이 애매하게 좋아해 준 순간을 끝까지 현금화하겠다는 의지는 실로 성실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이번 결과는 'AA급은 수요가 없진 않다'는 수준의 안도감이지, 아무 만기나 기분 좋게 통과하는 만능 면죄부가 아니다. 2년물 언더금리를 전면에 세우고 싶겠지만 3년물 오버금리라는 못난 자식도 같은 날 같은 이름표를 달고 나왔다. 마지막 변명까지 걷어내면 남는 결론은 하나다. 완판은 맞다. 다만 예쁘게 팔린 것은 전부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