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엔비디아를 환영합니다, 내용은 나중에: 두산의 야구장형 파트너십 공개

오후 3시 인파, 오후 4시 10분 도착, 대형 현수막까지 갖췄지만 정작 가장 작은 것은 설명이었다.

두산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7일 잠실야구장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맞았다. 황 CEO는 두산베어스 홈 경기 시구를 위해 왔고 박 회장은 시타자로 함께 나설 예정이었는데, 이번 만남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공개된 협력 사항은 누가 공을 던지고 누가 배트를 드는지였다.

황 CEO는 오후 4시 10분께 도착했지만 중앙문에는 오후 3시부터 취재진과 관람객이 몰렸다고 한다. 내용보다 대기 줄이 먼저 도착한 셈인데, 사업 설명을 군중 밀도로 대체하는 방식은 참으로 효율적이다. 발표에서 빠진 것을 사람 수로 메우면 질문도 잠시 늦출 수 있다.

중앙문 대형 현수막에는 'Welcome NVIDIA'와 'Our Partnership - It All Starts Here'가 걸렸다. 이 문구의 장점은 선명하다. 무엇이 시작되는지는 없고 시작한다는 말만 있으니, 틀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 계약서 대신 구장 전광판 문구로 사업을 브리핑하는 모습치고는 지나치게 자신만만했다.

박 회장은 두산 창립연도 1896년을 뜻하는 96번 유니폼을 입는다고 한다. 참 오래됐다는 사실은 등번호로 새길 만큼 또렷한데, 이번 협력의 내용은 현수막 한 줄보다 선명하지 않았다. 역사 홍보는 유니폼에 박고 미래 설명은 공중에 띄우는 구성은 좀 거지같다.

더 우아한 대목은 황 CEO가 최근 현대차, 두산, LG 등과 적극적으로 '로봇 동맹'을 맺고 있고, 지난 5일에는 한국이 제조업과 메카트로닉스, AI를 모두 갖춰 '완벽한 로봇공학'이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거창한 말의 현장 버전이 잠실야구장 중앙문 환영 현수막이라면, 로봇 동맹의 출발점을 공장보다 포토월로 정한 셈이다. 매우 놀랍다는 소감은 그래서 정확하다. 이 정도면 보는 쪽도 놀라지 않기가 어렵다.

지난 4월에는 매디슨 황 엔비디아 옴니버스·로보틱스 제품 마케팅 수석 이사가 두산로보틱스를 방문했다. 방문도 있었고, 환영도 있었고, 시구와 시타도 생겼다. 그런데 공개된 사실 가운데 또렷한 것은 여전히 오후 3시 집결, 오후 4시 10분 도착, 그리고 현수막 문구다. 숫자와 내용이 빠진 덕분에 이번 파트너십은 누구에게도 반박당하지 않는 깨끗한 상태를 유지했다.

결국 두산이 이날 보여준 것은 엔비디아를 반갑게 맞을 준비가 얼마나 철저한지였지, 무엇을 함께 할지에 대한 준비는 아니었다. 환영은 대형이었고 설명은 소형이었다. 마지막 핑계까지 치우면, 야구장 이벤트를 협력의 얼굴로 세운 이 연출은 그냥 개판은 아니어도 꽤 민망한 포토타임이었다.

반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