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세계 최대 TSMC의 당당한 고백: 1650억 달러를 깔아도 아직은 ‘그만큼만’ 됩니다

애리조나 공장도 열고 추가 공장 셋까지 약속했지만, AI 붐 앞에서 돌아온 답은 고급형 품절 공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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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leksandar Savic on Unsplash

TSMC와 CEO C.C. 웨이는 주주총회 뒤 미국 고객의 AI 반도체 수요를 다 받아내기 어렵다고 밝히며 “고객 수요가 너무 높아서 우리는 그만큼만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사가 미국 공장 확장까지 진행한 뒤 내놓은 결론이 ‘최대한 열심히 모자라겠다’는 취지라는 점에서, 이번 발표의 타깃은 분명 TSMC 자신이다.

회사는 이미 애리조나 공장을 열었고, 미국에 추가 공장 3개와 첨단 패키징 시설 2개, 연구개발 센터 1개를 위해 165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렇게 길고 웅장한 설비 목록을 읊은 다음에도 핵심 메시지가 여전히 공급 부족이라면, 확장 발표는 해결책이 아니라 부족을 더 정교하게 설명하는 브로슈어에 가깝다.

더 건조하게 웃긴 대목은 시간이다. 미국 기반 생산으로 고객 수요를 채우는 데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취지의 설명이 붙었다. 세계 최대 식당이 증축 계획서를 자랑한 뒤 오늘 밥은 모자란다고 차분히 안내하는 장면과 비슷한데, 차이가 있다면 여기서는 계산서가 훨씬 먼저 도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배경은 더 거창하다. 딜로이트 전망에 따르면 AI 붐을 타고 반도체 산업은 2027년까지 1조 달러 규모가 될 수 있다. 그렇게 큰 잔치를 예고해 놓고 가장 중요한 공급자가 꺼낸 문장이 “우리는 그만큼만”이라면, 잔칫상 광고를 해 놓고 접시는 아주 오랜 시간 뒤에 들여오겠다는 소리다. 이쯤 되면 수요 예측이 아니라 대기표 미학이다.

가격에 대해서도 TSMC는 특유의 점잖음을 잃지 않았다. C.C. 웨이는 가격을 올리고 싶다고 하면서도 DRAM과 SSD에서 봤던 식의 갑작스러운 인상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참으로 고상하다. 급하게 벗겨 먹지는 않겠다는 말로 안심을 주는 방식은, 결국 벗겨 먹을 가능성은 남겨두고 표정만 얌전하게 관리하는 전형적인 기업 문장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일종의 정직함으로 읽을 수도 있다. 못 맞출 수요를 못 맞춘다고 먼저 말하고, 투자 계획은 크게 말하고, 가격 인상은 천천히 암시하는 편이 등신같이 행동하는 것보다는 낫다. 다만 세계 최대 업체가 공장과 패키징과 연구개발 센터를 늘어놓고도 마지막 문장이 “그만큼만”이라면, 그건 겸손이 아니라 대안 없는 시장에서 가능한 가장 세련된 배짱이다. 더 지을 예정이라는 말로도 공급 부족이 안 가려진다면, 이제 남는 핑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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