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북미 1위라더니 일본에선 110억씩 끊어 파는 효성중공업의 장대한 보폭

누적 640억원은 분명 성과다. 다만 제목이 먼저 뛰고 숫자가 뒤따라오는 방식일 뿐이다.

turned-on MacBook Pro
Photo by Austin Distel on Unsplash

효성중공업은 3일, 지난해 북미 시장에서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일본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 진출해 누적 수주액 640억원을 올렸고, 최근에는 일본 에너지 개발업체와 약 110억원 규모의 고압 연계 ESS 설계·조달·시공(EPC) 프로젝트 계약도 맺었다고 밝혔다. 대상은 분명하다. 효성중공업의 일본 확장 발표는 성과를 말하면서도 제목이 먼저 멀리 가 있는 종류의 자신감이다.

기사는 미국 초고압변압기 시장 점유율 1위와 북미 역대 최대 매출을 전면에 세운다. 그리고 일본 이야기로 넘어오자 갑자기 ESS가 등장한다. 잘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겠는데, 종목을 바꿔가며 승전보를 한 줄로 잇는 솜씨는 약간 대형 교향곡을 예고해 놓고 독주 한 악장을 장엄하게 소개하는 쪽에 가깝다.

누적 640억원은 국내 전력 기기 업체 중 최대 수주액이라고 한다. 이 표현은 매우 영리하다. 비교 대상을 국내 업체로 한정한 덕분에 일본 시장 전체에서 어느 정도인지 묻는 사람만 괜히 성격이 급한 사람이 된다. 숫자가 빠진 덕분에 발표는 누구에게도 크게 반박당하지 않는 깨끗한 상태를 유지했다.

가장 최근 계약은 약 110억원 규모의 고압 연계 ESS EPC 프로젝트다. 물론 계약은 계약이고, 일본에서 첫발을 떼는 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일본으로 보폭을 넓힌다'는 표현 옆에 110억원이 놓이면, 보폭이라기보다 발끝을 정교하게 앞으로 내민 정도에 더 가깝다. 효성중공업이 싫어할 문장으로 쓰자면, 제목이 사업보다 먼저 현지에 도착했다.

북미에서 인정받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데이터센터 확대 기조에 힘입었다는 설명도 붙었다. 좋은 문장이다. 북미 실적, 일본 ESS, 데이터센터라는 세 가지 단어를 한 문단에 넣어 분위기를 매끈하게 만든다. 연결 고리가 기사 안에서 충분히 펼쳐지지 않았다는 점은 오히려 장점이다. 자세한 설명이 없으니 독자는 웅장함만 받아 가면 된다.

결국 남는 것은 나쁜 뉴스가 아니라, 좋은 뉴스를 가능한 한 더 장엄하게 포장하려는 성실함이다. 효성중공업은 실제로 일본에서 640억원을 수주했고 최근 110억원 EPC 계약도 따냈다. 그래서 더 분명해진다. 성과는 성과대로 말하면 될 일을 굳이 '승승장구'와 '보폭'으로 부풀린 탓에, 마지막 변명까지 제목이 대신 먹어버렸다.

반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