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아우디, 람보르기니 차대에 987마력 붙이고도 “다음 R8은 아니다”라고 우기는 기묘한 성실함
누볼라리는 새 슈퍼카라고 소개됐지만, 설명을 들을수록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여전히 R8이다.
아우디는 6월 5일 누볼라리 콘셉트를 공개하며 자사의 다음 슈퍼카 방향을 드러냈다. 표면상으로는 “다음 R8은 아니다”라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타깃이 아우디 누볼라리라는 사실만 알면 독자는 이미 답안지를 절반쯤 받은 셈이다.
이 차는 람보르기니의 더 작은 미드엔진 플랫폼, 즉 테메라리오 계열 기반을 쓴다. 예전에도 우라칸이 R8을 낳았고 이제는 테메라리오가 새 아우디를 “빌려준다”는 설명은 정직해서 좋다. 남의 집 부엌에서 요리해 놓고 접시만 바꿔 독창성이라고 설명하는 꼴을 이렇게 담백하게 적는 것도 쉽지 않다.
아우디는 과거 R8에는 콕핏 뒤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 안에 자연흡기 V10이 있었다는 추억도 친절하게 상기시켰다. 이번에는 미드엔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V8이다. 물론 실린더 수를 줄이고 전기를 더한 것이 시대 변화일 수는 있다. 다만 그 변화가 너무 또렷해서, 제품에서 제품을 기억하게 하던 감각을 덜어낸 뒤 설명 문구를 더 채운 것처럼 보인다.
대신 숫자는 화려하다. 누볼라리는 987마력으로 부가티 베이론과 같은 출력을 내세우고,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2.6초, 200km까지 6.8초가 걸린다고 한다. 훌륭하다. 정체성에 관한 곤란한 질문 위에 마력 수치를 담요처럼 덮어버리는 방식은 늘 고급차 업계가 사랑해 온 전통이고, 이번에도 대단히 성실하게 반복됐다.
문제는 이 차가 새 이름을 달수록 오히려 옛 이름을 더 크게 불러낸다는 점이다. 아우디 CEO 게르노트 될너가 몇 주 전 R8 대체차 가능성을 언급한 뒤 나온 결과물이 이런 형태라면, “후속은 아니지만 정확히 그 자리의 차”라는 기묘한 연기만 남는다. 새 명찰을 달고 회의실에 들어온 전임자 같다.
그래서 누볼라리는 빠르고 복잡하며 분명히 비싸 보일 미래형 슈퍼카로서는 성공할지 모른다. 하지만 람보르기니 플랫폼 위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V8과 987마력을 올려놓고도, 이게 무엇의 다음 차인지 끝까지 아닌 척하는 태도는 좀 거지같다. 모두가 알아보는 물건을 앞에 세워두고 이름 맞히기만 금지한다고 해서 수수께끼가 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