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ORADIAN 2013

기술

AMD, 549달러로 성능을 줄이는 법을 발명하다: RX 9070 GRE의 정직한 퇴보

같은 값에 더 적은 코어와 메모리를 내놓고도 이름은 거의 그대로 둔, 보기 드문 노골성이다.

AMD의 Radeon RX 9070 GRE는 2026년 6월 공개된 그래픽카드로, 미국 출시 가격은 549달러다. 문제는 조롱이 아니라 산수인데, AMD는 1년여 전 더 우수한 RX 9070도 549달러에 내놨고, 이번에는 거의 같은 이름으로 덜 들어 있는 버전을 같은 값에 다시 진열했다.

RX 9070 GRE는 일반 RX 9070 대비 GPU 코어가 85%, 메모리는 75%, 메모리 대역폭은 66% 수준이다. 제품에서 제품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을 꽤 성실하게 덜어냈는데도 가격표만 보존한 점은 대단하다. 과자 봉지를 같은 값에 팔면서 내용물만 줄이는 수법을 드디어 그래픽카드 매대로 옮겨온 셈이다.

AMD 입장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친절할 수 있다. 549달러를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에 소비자는 가격 비교라는 번거로운 작업 없이, 같은 돈으로 예전보다 못한 것을 사는 경험에 곧장 도달할 수 있다.

더 아름다운 대목은 이름이다. RX 9070과 RX 9070 GRE는 얼핏 보면 파생형 정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숫자 아래 성능 감량을 숨기기 좋은 포장이다. 줄일 건 줄였으니 이름도 솔직하게 RX 9070 Less라고 했으면 덜 멍청하기 짝이 없어 보였을 텐데, AMD는 끝까지 체면만 풀사이즈로 유지했다.

하드웨어적으로는 이 카드가 2023년 449달러에 출시된 RX 7700 XT와 가장 비슷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2026년에 549달러를 내고, 설명을 듣다 보면 2023년의 449달러 지점과 마주치는 구조다. 시간여행이 늘 낭만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AMD가 굳이 실물로 증명해줬다.

게다가 이 GPU는 중국에서 1년가량 판매된 제품의 미국 출시라고 한다. 오래된 것을 새로 내놓는 일 자체야 가능하지만, 같은 549달러에 더 좋은 자사 제품이 이미 있었던 회사가 이 카드를 들고 와선 진지하게 선택지인 척하는 순간 이야기는 개판이 된다. RX 9070 GRE는 형편없는 물건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549달러라는 문 앞에서는 똥덩어리보다 가치가 없다. 마지막 변명까지 지우는 건 가격표 하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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