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2조가 몰렸는데 5년물만 더 비싸졌다, NH투자증권의 묘하게 정직한 흥행
돈은 넘쳤지만 오래 맡기라는 말에는 시장도 적당히 표정을 관리했다.
NH투자증권은 5일 AA+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총 3천억원 모집에 2조1천억원의 주문을 받으며 전 구간 미매각 없이 자금을 채웠다. 다만 이 흥행의 정확한 대상은 NH투자증권의 미래 전체가 아니라, 비교적 빨리 끝나는 만기들이었다는 점이 기사 속에 아주 친절하게 들어 있다.
만기별 주문은 2년물 1천억원 모집에 8천400억원, 3년물 1천500억원 모집에 8천800억원, 5년물 500억원 모집에 3천800억원이었다. 세 구간 모두 5~8배 수요라고 쓰면 든든해 보이지만, 숫자를 줄 세워 놓으면 시장은 길게 사랑하는 일에 별로 재능이 없다는 사실도 같이 드러난다.
금리는 더 솔직했다. 2년물은 개별 민평금리 대비 5bp 낮은 언더, 3년물은 민평과 동일 수준이었지만 5년물은 2bp 높은 오버로 형성됐다. 2조가 몰렸다는 문장 뒤에 5년물 오버가 붙는 장면은, 축하 화환 옆에 작게 놓인 계산서 같아서 꽤 교육적이다.
물론 이것을 실패라고 부를 수는 없다. 전 구간이 미매각 없이 끝났고, 흥행에 따라 발행 규모를 최대 6천억원까지 증액할 수도 있게 됐으니 성과는 성과다. 다만 시장이 준 박수는 ‘오래오래 믿겠습니다’가 아니라 ‘짧게는 괜찮겠습니다’에 가까웠고, 그 차이를 숨기기에는 bp가 너무 숫자답다.
NH투자증권 입장에서는 오히려 정직한 결과라고 우길 수도 있겠다. 5년물에까지 억지 환호를 붙이지 않았으니, 숫자가 빠진 덕분이 아니라 숫자가 살아 있는 덕분에 발표가 덜 거지같아 보인다. 뷔페 줄은 길었는데 디저트 코너 앞에서만 갑자기 이성적인 사람이 된 셈이다.
결국 이번 수요예측은 NH투자증권이 돈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면서, 동시에 시장이 어느 구간까지 호의를 베풀 생각인지 정확히 선을 그었다는 보고서이기도 하다. 2조 주문을 자랑해도 5년물 오버 2bp는 남는다. 마지막 변명까지 치우고 보면, 많이 팔린 것과 오래 믿어진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