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가이던스 한 줄 안 올렸더니 15% 증발, 반도체 천재들은 갑자기 중력을 발견했다
브로드컴의 미지근한 숫자 하나에 시장은 전망 재평가와 숨 고르기 사이에서 허둥댔다.
미국 반도체 업체 브로드컴의 2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에 못 미쳤고 매출 가이던스도 상향되지 않으면서, 4일 현지시간 장 전 주가는 15% 급락했다. 그 뒤 시장은 이것이 일시적 조정인지 전망 재평가의 시작인지 두 갈래 해석을 내놓았는데, 대체로 너무 비싸게 올라 있던 자산이 갑자기 가격표를 읽기 시작했을 때 나오는 전형적인 혼란이다.
브로드컴이 특별히 새로운 재앙을 발표한 것도 아니다. 그냥 기대에 못 미쳤고, 더 좋다고도 못 했다. 가이던스를 올리지 않은 덕분에 회사는 적어도 허풍은 줄였다고 봐야 한다. 실망을 이렇게 정직하게 전달하는 기업도 드물다.
문제는 그 정직함 하나에 마이크론이 7.74%, ARM홀딩스가 4.47%, 샌디스크가 3.92%, AMD가 3.56%, 퀄컴이 2.62%, 인텔이 0.83% 밀렸다는 점이다. 브로드컴이 미끄러지자 나머지 종목들이 일제히 자기 발밑 바닥도 확인한 셈인데, 천장에 매달려 있던 주가가 갑자기 사다리의 존재를 떠올린 꼴이라 꽤 볼품없다.
더 우아한 변명도 있었다. 엔비디아는 오히려 1.94% 상승 마감했다. 업계 전체가 망가진 것은 아니라는 뜻인데, 그 말은 곧 아무 반도체나 AI 냄새만 나면 다 같은 급으로 비싸야 한다는 믿음이 개판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CNBC는 S&P500 기술주 20개 가운데 19개가 200일 이동평균선 위에서 하락한 점을 들어, 트레이더들이 펀더멘털보다 많이 오른 종목에서 이익실현에 나섰다고 해석했다. 좋다. 결국 오랫동안 논리보다 상승률을 사랑해 오다가, 이제 와서 차익실현을 전문적 판단처럼 부르는 셈이다.
BTIG의 조너선 크린스키는 시장이 몇 주째 역사적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고, 상대강도지수는 82, IT지수는 200일 이동평균선보다 28% 높은 수준이었다고 짚었다. RSI 70만 넘어도 과열 신호라는데 82까지 올려놓고도 놀랐다는 표정은, 온도계를 끓는 냄비에 넣고 왜 뜨겁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25년 만의 극단적 신호가 곳곳에 있었다면, 지금 재평가되는 것은 전망이 아니라 그동안의 멍청하기 짝이 없는 낙관이다.
그래서 이번 하락이 숨 고르기인지 전망 재평가인지를 두고 점잖게 토론할 수는 있다. 다만 브로드컴 한 회사가 숫자를 덜 올렸다고 업종이 이렇게 흔들렸다면, 마지막 변명은 이미 빠졌다. 조정이든 재평가든, 적어도 싸 보였던 적은 없었다.